[생각글- 워낭소리 보고 왜 눈물짓냐면...] - 심기자 난 울지 않을 줄 알았다. '워낭소리'를 보고온 누군가가 "어린시절 소를 키워본 사람들에겐 눈물이 줄줄 흐르는 영화"라고 했다. 난 어릴 때 소꼴 베러 가본 적도 없다. 떡방앗간집 아들로만 살았으니까. 그래서 이 영화를 볼까 말까 주저했다. 어떤 계기는 우연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창원에 비와 함께 눈발이 휘날리던 지난 목요일(19일) 저녁. 한 모임에 참석했다 술을 석 잔 정도 받고야 말았다. 모임이 끝난 시간은 밤 9시30분. 차를 몰고 집으로 갈 수도 없고, 대리운전 부르기도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 택시 타고 영화관에 가서 '워낭소리'나 보러 가자! 하도 입소문이 난 영화라 누가 봤냐고 물을 때 대화라도 될 수 있게 봐 둬야지. 영화관에 도착하니 시간도 딱 들어맞았다. 10시 상영이다. 혼자 영화보러 오면 언제나 그렇듯이 '쪽'팔린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정말 없어보일 테니. '저 친구는 요즘 세상에 애인도 없나' 할 것 같아서...... 불이 꺼지니 안심이다. 스크린 속으로 빠져든다. 농사만 지어온 최씨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 그리고 나이가 40년이나 된 소. 영화는 잔잔한 시골 이야기다. 그냥 할아버지와 30년가량 함께한 소 한마리를 주제로 만든 다큐멘터리일 뿐이다. 듣던 바와는 달리 영화 중반까진 객석에선 가벼운 웃음도 터져나온다. 소밖에 모르는 고지식한 할아버지에게 할머니는 푸념섞인 말투로 "내가 사람 하나 잘못 만나서 평생 고생"이라며 "소 팔아!"라고 외친다. 하지만 단순히 "안 팔아"로 퉁명스럽게 답하고 마는 할아버지. 관객들의 폭소를 자아낸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난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을 때 그랬다. 아버지도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처럼 고집이 센 분이셨다. 어머니에 대한 배려는 눈곱만큼도 없이 당신의 성격대로 얘기하신 분이셨으니까. 그 때문에 어머니가 늘 속이 상해 하신 말이 "내가 사람 하나 잘못 만나서 평생 고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신 지 아직 1년도 안됐건만, '워낭소리'를 보러와서 아버지가 생각나다니...... 그때부터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가 아버지를 연상시키며 내 눈에는 주르르 눈물이 흐른다. 최씨 할아버지가 병원 진단을 받을 때 비춰진 문드러진 발가락을 보면서, 생전 방앗간일 하시다 잘려나간 아버지의 검지 손가락을 떠올린다. 그렇게 삶의 여유도 모른 채 고생만 하다 가셨으니 내 마음속 회한을 어찌 말로 다하랴. 영화는 '워낭소리'는 나이 듦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말하는 것 같다. 소가 죽기 직전에 고삐를 자르는 최씨 할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 편안하게 보내주려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보며 많은 관객이 울었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소와의 애틋한 작별 장면이 내게는 아버지와의 이별로 오버랩됐다. 지난 여름 그 얼마나 소원했던가. 다시 한번 동해안 여행을 갈 수 있도록 암을 이기는 기적이 일어나 달라고. 아니, 다만 몇 개월이라도 더 살아 계셔달라고. 소는 할아버지를 위해 그렇게 많은 땔감을 실어날라 놓고 떠났다면, 내 아버지는 방앗간일을 하며 나를 공부할 수 있게 해주고 지금 일할 수 있는 소중한 땔감을 마련해 주시고 떠난 것이리라. 남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스크롤이 흐르며 영화가 끝났는데도 자리에서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밖으로 나오니 눈발은 그치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영화관에서 집까지 가는 길. 택시를 타고 싶지도 않았다. 우산 하나만 받쳐들고 술취한 사람처럼 무작정 걸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옛노래 '울고넘는 박달재'를 목이 터지라 부르며. 아버지와 함께 '마지막 소풍'을 간 2007년 11월 29일 그날 밤 설악산에도 이날처럼 비가 내렸다. - 기자스쿨 심기자-